Journal Search Engine
Search Advanced Search Adode Reader(link)
Download PDF Export Citaion korean bibliography PMC previewer
ISSN : 1225-8857(Print)
ISSN : 2288-9493(Online)
Journal of Korean Society of Rural Planning Vol.24 No.1 pp.113-127
DOI : https://doi.org/10.7851/Ksrp.2018.24.1.113

A Study on the Over-layered Landscape Characteristics of Ipsan Village, Uiryeong Area

Eui-Je Lim, Hyun-Su So*, Su-Hyun Bae**
Dept. of Landscape Architecture, Gyeongnam National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Dept. of Landscape Architecture, The University of Seoul
**Dept. of Urban System Engineering, Graduate School, Gyeongnam National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Corresponding author : So, Hyun-Su 02-6490-2848hsso@uos.ac.kr
20180108 20180209 20180225

Abstract

This study comprehends that the landscape of Ipsan Village is the accumulated output of the landscape management and social behavior by the historic personages through the reference research and field surveys. And the study sorted out the over-layered landscape characteristics of Ipsan Village by analyzing the dispersed landscape elements as follows. First, right before the start of Japanese invasions to Korea(1592–98), Tamjin(耽津) An(安) Family moved into Ipsan and started establishing the a single clan village. At a site with mountain background and facing the water(背山臨水), the village used to be a typical farming one with an organically planned road-system and housing area following the traditional order. However, the landscape has changed drastically since the 20th century with the construction of banks, roads and readjustment of arable land etc. Second, the original landscape, which can be figured out through the ‘Gosanjaesibyukgyeong(高山齋十六景)’ in the 18th century, shows its harmony with natural landscape: mountain & valley, stream & field, traditional trees, etc, cultural landscape: village, well, spring, etc, and momentary landscape: seasons, time, weather phenomena, sound, behavior, etc. Third, based on the second, 16 natural landscape elements: mountain & stream, planting, etc. and 25 cultural landscape elements: housing spaces, self-cultivation & ceremony spaces, community spaces and modern education & enlightenment spaces were selected and interpreted as landscaping meanings. Fourth, the over-layered landscape which stems from the compositive functions and inter-connectivity of landscape elements which consists Ipsan Village is regarded as ‘Natural geographical and Fungsu landscape’, ‘Rural production and livelihood landscape’, ‘Confucian ceremony and symbolic landscape’ and ‘Modern education and enlightenment landscape.’


의령 입산마을의 중층적 경관 특성

임 의제, 소 현수*, 배 수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조경학과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경남과학기술대학교 대학원 도시시스템공학과

초록


    I.서 론

    1.연구의 배경과 목적

    경상남도 의령군에 위치한 입산마을에는 조선중기 이 후 탐진(耽津) 안(安)씨가 대대로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 왔다. 입산마을은 뛰어난 자연환경 하에서 배산임수의 마을 형태가 고스란히 드러난, 원형이 잘 보존된 전통적 농촌이다. 임진왜란 당시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 1552∼1617)를 도와 의병에 나섰던 지헌(止軒) 안기종 (安起宗, 1556∼1633)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이 마을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의 산실로도 이름이 높다. 이와 관련하여 항일 애국지사인 백산(白山) 안희제(安熙濟, 1885∼1943) 생가, 항일 독립정신의 배양소였던 창남학 교, 지역의 인재들을 배출한 고산재(高山齋) 등 역사문 화 유적이 다수 남아 있다. 이에 입산마을은 서부 경남 지방에서 전통 한옥과 유교문화 유산이 즐비한 부촌이자 명문 고촌이며, 개화의 물결이 가장 먼저 들어온 개명 (開明) 마을로 알려져 있다(http://www.uiryeong.go.kr). 그 러나 오랜 시간 번성했던 이 마을도 여느 농촌마을과 다 름없이 급격한 사회 변동으로 인하여 거주민 다수가 도 시로 이주하면서 번성했던 모습과 전통이 점차 사라지는 상황에 처해 있다.

    입산마을은 2007년 ‘문화역사마을가꾸기 사업’과 2013 년 ‘설뫼지구 농어촌 테마공원 조성사업’에 선정되어 각 각 문화체육관광부와 농림축산식품부의 지원을 받았다. 특히 후자의 사업을 통해서 마을 근접한 부지에 독립영 상관과 테마공원을 조성하였다. 입산마을에 축적된 다양 하고 복합적인 역사와 장소를 아우르는 문화경관을 다루 는 대신, 근대기 독립운동을 부각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근래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일반농산어촌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사업의 주요 목적은 ‘농산어촌지역 주민의 소득과 기초생활수준을 높 이고, 농촌의 어메니티 증진과 계획적 개발을 통하여 농 산어촌의 인구 유지 및 지역별 특화 발전을 도모하는 것 (http://www.raise.go.kr)’이며, 이는 농촌 지역의 고유한 역 사ㆍ문화ㆍ자연자원을 활용한 프로그램 개발과 주민참 여 및 지역 사회 중심의 지속가능한 농촌개발의 모델 창 출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서 마을의 원형경관과 문화자 원에 대한 면밀한 연구가 선행된 후 마을 경관의 보전 대책과 함께 이를 활용한 개발방안을 수립하는 것이 바 람직하다.

    본 연구는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전통마을로서 의령 입산마을이 지닌 경관의 가치 인식으로부터 출발하였다. 이에 입산마을에 내재된 유, 무형 문화자원과 경관요소 를 면밀히 조사·분석하여 시공간적으로 중첩되어 나타나 는 경관 특성을 도출함으로써 입산마을의 가치를 제고하 고, 향후 전통 농촌마을의 경관 보전 및 개발방안에 대 한 단서를 제공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입산마을과 관련한 연구 성과로서 Lee(2007)는 입산마 을에 남아있는 근대기 부농주택의 건축적 특성을 도출하 였으며, 의령문화원 주도로 입산마을의 역사와 문화 라는 백서 형식의 마을지(誌)가 간행된 바 있다. 이는 본 연구에서 마을의 기초 현황을 파악하는 문헌 자료로 이 용되었다. 또한 Lee(2009)와 Kim(2017)은 문화역사마을가 꾸기 사업 대상 마을로서 입산마을을 포함하여 사업을 점검하였다. 살펴본 바와 같이 입산마을이 지닌 역사와 경관을 총체적으로 다룬 연구는 진행되지 않았다.

    2.연구의 범위와 방법

    전통마을은 세계의 여러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 나는 양상으로서 원시 사회로부터 공동체의 삶과 관련된 목적을 가지고 인위적으로 조성된 촌락이다. 따라서 전 통마을은 선조들의 삶이 우리 풍토 환경 속에 개입된 향 토 경관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자연경관과 구분되는 전 통마을의 문화경관은 역사․문화․생활양식 등의 매개체를 통하여 공간상에 투영된 결과이며, 정주 패턴뿐 아니라 문화적 가치․규범․토지에 대한 태도가 중첩되어 표출된 경관을 의미한다(Sin, 2007: 114). 이러한 전통마을의 경 관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시간성을 바탕으로 하여 형성 과정과 기능, 물리적 구성요소, 거주자의 인식 그리고 경 관적 의미까지 다각적 측면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입산마을의 중층적 경관 특성을 도출하려는 본 연구 의 공간적 범위는 의령군 부림면 일원으로서 행정구역상 입산리와 주변 마을 및 자연환경을 포함한다(Figure 1 참 조). 또한 연구의 시간적 범위는 입산마을에 탐진 안씨 가 정착하기 시작한 임진왜란 이후부터 급격한 사회 변 동으로 인한 마을의 물리적 경관 변화가 발생하기 이전 인 광복까지의 근대기로 한정하였으며, 일부 마을의 변 화 과정 분석에서는 현재 상황을 비교하여 고찰하였다.

    연구 방법은 일차적으로 문헌 분석을 진행하였으며1), 탐진 안씨 문중에 전해지는 조선시대 문집인고산한사 (高山閒史)연파집(淵坡集에 기록된 입산마을의 원형경관 실체로서고산재십육경(高山齋十六景)의 확 인에서 출발하였다. 다음으로 전국 지리지인신증동국 여지승람과 향토지리지인의령군지(宜寧郡誌),의령 누정록(宜寧樓亭錄),입산마을의 역사와 문화에 수록 된 마을의 역사, 문화, 경관, 자연 자원에 대한 정보를 추출하여 정리하였다. 연구의 후속 과정으로 2015년 1월 부터 2017년 12월까지 6차례 현장조사를 실시하였다. 문 헌 분석을 통해 추출한 입산마을의 물리적 환경과 경관 요소들을 확인하고 위치를 지형도에 표기하였으며, 사진 을 촬영하여 현 상태를 기록하였다.

    현장조사를 바탕으로 하고 마을의 변화 과정을 고찰하 기 위하여 국토지리정보원(National Geographic Information Institute: NGII)에서 제공하는 일제강점기 지형측량도 (1911년·1917년, 축척 1:50,000), 광복 이후 항공사진(1954 년)과 지형도(1956년·2007년, 축척 1:25,000), 현재의 수치 지형도를 분석하였다. 또한 현장에서 확인하기 어려운 경관요소와 역사적 사실에 대한 탐문, 마을사람들의 인 식 조사를 위하여 거주민과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문중 종손과 마을 이장을 비롯한 고령자들을 대상으로 하였으 며, 마을 역사에 해박한 안명달씨의 구술에 도움을 받았 다. 이상의 연구 과정은 전통마을에 내재하는 문화를 파 악하고, 장소에 형성된 경관을 이해하고자 하는 문화인 류학적 접근 방법이다.

    II.결과 및 고찰

    1.입산마을의 형성과 공간구조

    1)탐진 안씨의 입향과 정착

    약 600년 전 관향조(貫鄕祖)인 탐진 안씨 시조가 개 성 장단에 살다가 이성계의 역성혁명 때 창녕 영산으로 피난하였으며, 입산마을에 탐진 안씨가 처음 입향하여 터를 잡은 것은 약 450년 전 임진왜란 직전이라고 알려 져 있다(http://www.uiryeong.go.kr). 당시 입향조(入鄕祖) 인 지헌 안기종이 의령으로 들어와 처음 정착한 마을은 입산마을이 아니라 유곡천 맞은편의 경산리 ‘안골’이었 으며, 원래 입산마을에는 청도 김씨들이 터를 잡고 있었 다고 전해진다(Uiryeong Culture, 2003:441). 이후 안기종 은 임진왜란을 겪은 후 입산마을 뒤쪽에 입지한 장백산 의 북쪽인 ‘율리(율곡)’에 거주하였으며, 후손들도 한동 안 인근의 여러 마을에 흩어져 살다가 점차 입산마을로 들어와 모여 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Kim et al., 2008:41).

    입산마을의 원래 한자 지명은 ‘설산(雪山)’인데 토박 이말로는 ‘설뫼’, ‘설미’, ‘설메’라고 불렀고, 이는 일제강 점기 최초 지형도(1911년 제작, Figure 4-① 참조)의 표기 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유곡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 한 마을이 ‘경산(景山, 볕뫼)’인데, 눈이 쌓인 설뫼에 햇 볕이 나면 녹아 버리니 경산이 좋은 마을 이름이라는 등 서로 대립하여 왔으며, 이로 인해 설뫼마을 사람들이 ‘눈[雪]’ 대신 꼿꼿이 ‘서다[立]’라는 글자로 마을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는 유래가 전한다(Uiryeong Culture, 2003:441). Figure 4-①의 ‘설산’과 Figure 4-②에 표기된 ‘입산’이라는 마을 이름의 변화를 볼 때, ‘입산’은 1910년 대에 들어서 공식 명칭으로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마을길과 주거지의 공간구조

    ①안길과 주거지의 형성

    입산마을은 주산(主山)인 방개봉의 지형적 흐름을 따 라 남북방향으로 길게 입지하였다. 전통마을의 진입부가 하나인 것이 일반적인데 입산마을은 진입부에 해당하는 어귀공간이 양쪽으로 형성되어 바깥길과 연결됨으로써 외부와 교류가 용이한 구조이다. 마을 안길은 양쪽의 바 깥길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데, 방개봉 산자락에 기댄 주거지 영역의 전면부가 농경지와 만나는 구불구불한 경 계를 따라서 횡으로 형성되었다. 이처럼 농경지와 인접 하여 마을 안길이 형성된 것은 생업에 직접 참여하였던 근대적 부농주거의 특성(Lee, 2007: 61)이 드러난 것이라 고 볼 수 있다. 마을 내부 간선로인 안길에서 수직 방향 인 주산을 향하여 나란히 분화된 여러 개의 샛길은 짧고 막다른 골목 형태를 띠고 있으며, 그 사이에 입지한 주 요 고택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서 전통적 주거경관을 형성한다(Figure 2 참조).

    한편 종가를 비롯한 주택군은 마을의 중심부에 입지 하는데, 이는 마을 양쪽에 위계가 비슷한 두 곳의 진입 부를 가진 특성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2) 더불어 전통적 으로 주산을 기준으로 하는 절대적 배치 개념이 지켜졌 는데, 안길에서 분화된 샛길의 가장 끝부분이자 주거지 영역 중 상대적으로 후면부에 종가가 입지하였다. 마을 중심 주거지와 접한 남측에 상대적으로 위계가 낮은 문 중의 주거지가 불규칙하고 넓게 분포하였는데, 이곳의 샛길은 기능성을 앞세워 순환하는 구조를 보인다. 중심 주거지의 북쪽 영역에는 문중 재실인 상로재(霜露齋)와 사당인 충효사(忠孝祠)가 자리 잡았는데, 입산마을 내에 서 상대적으로 위계가 높은 곳이다.

    ②바깥길의 형성과 변화

    전통마을의 바깥길은 마을 간 왕래와 교역, 물자 수송 등 사회경제적 기능뿐만 아니라 문화적 교류를 위한 기 반시설로서 중요하다. 아울러 바깥길은 마을 안길로 이 어지는 전이공간이며, 입구에 유교적 의례공간이 배치되 며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입산마을의 바깥길이 변화하 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실증적 자료로서 시기별 지형 도를 분석하였다(Figure 3 참조). 근대적 측량을 기반으 로 제작된 지형도는 일제강점기에 처음 만들어졌는데, 대축척이지만 입산마을과 주변 교통로 및 유곡천변의 변 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바깥에서 입산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남쪽 세간 교에서 진입하는 방법과 북쪽 신반(부림면소재지)에서 진입하는 방법 두 가지 뿐이다(Figure 3③ 참조). 그러나 1911년에 제작된 최초의 지형도(Figure 3①)를 살펴보면 근대 이전 마을 바깥길은 세 갈래로 나타난다. 첫째, 남 쪽에 인접한 세간마을(世干里)에서 들어오는 길, 둘째로 창녕군의 낙동강 적포나루를 거쳐 북쪽에서 들어오는 길, 셋째로 창녕군의 낙동강 박진나루를 거쳐서 마을 동 쪽 경산마을을 지나 유곡천을 건너 들어오는 길이다. 이 와 같은 세 갈래의 마을 접근로는 남측에 세간교가 세워 지기 전3)까지 계속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입산마을의 바깥길 중에서 중요시 되었던 것은 남쪽 과 북쪽 접근로였으며,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비중 을 가진 길이었다고 판단된다. 이는 마을 바깥길의 남쪽 입구에 전통적 의례시설인 유허비, 정려각이 위치한 것 과 마을 북쪽 길 입구 바위에 새겨진 ‘설산동문(雪山洞 門)’이라는 글씨를 통해서 확인된다. 예전 입산마을 사람 들은 남쪽 곽재우가 살았던 세간리와 의령읍뿐만 아니 라, 더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북쪽 창녕지역과 왕래를 중요시하였다. 이는 탐진 안씨가 창녕의 영산현에서 이 주했던 사실에 따른 정서적 유대감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마을 고령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예전에는 창 녕과의 통혼(通婚)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1911년 지형도에 나타난 길이 마을 바깥길의 원형에 가깝다고 추정하면, 수백 년간 마을 밖을 연결하던 옛길 은 불과 몇 년 후 제방 축조와 신작로 개설에 따라 급격 하게 쇠퇴하는 양상을 보인다(Figure 3② 참조). 이후 제 방 증축, 도로 확장과 직선화, 경지 정리 등에 의하여 입 구를 제외하면 경작지으로 변해서 현재 흔적을 찾기 어 렵다(Figure 4 참조).

    2.입산마을의 경관요소 분석

    1)고산재십육경(高山齋十六景)의 원형경관

    조선후기 탐진 안씨 문중의 선비로서 설산재(雪山齋) 안여석(安如石, 1717~1787), 가소헌(可素軒) 안덕광(安德 光, 1783~1840), 난암거사(蘭巖居士) 안덕승(安德升, 1789~1826) 등의 문집인 고산한사에는 별서이자 서 당으로 사용한 고산재4) 주위의 16가지 승경을 읊은 ‘십 육경시’가 실려 있다(Figure 5 참조). 고산재십육경은 입산마을의 자연과 인문경관이 어우러진 원형경관을 보 여준다. 연파(淵坡) 안방로(安邦老, 1852~1938)는 이를 근간으로 하여 고산재팔경(高山齋八景)을 노래하기 도 하였다.5)

    고산재십육경은 ‘고오제월(孤梧霽月; 외로운 오동 나무에 걸린 비갠 후의 달)’, ‘소죽청풍(踈竹淸風; 성긴 대나무 숲에 부는 맑은 바람)’, ‘옥후반송(屋後盤松; 별 서 뒤에 심겨진 반송)’, ‘정상노회(井上老檜; 우물 위의 늙은 향나무)’, ‘소송모설(踈松暮雪; 성긴 소나무 숲에 저물녘 내리는 눈)’, ‘총림야우(叢林夜雨; 울창한 숲에 내리는 밤비)’, ‘하리석천(霞裏石泉; 노을 속 돌 틈에서 솟는 샘)’, ‘우후명간(雨後鳴涧; 비온 후 울리는 계곡 물 소리)’, ‘광야농가(廣野農歌; 넓은 들판의 농사짓는 노랫 소리)’, ‘유애채요(幽崖採谣; 아득한 산언덕에 나물 캐는 노래 소리)’, ‘월촌적등(越村績燈; 건너 마을 집들에 이 어진 등불)’, ‘장천어화(長川漁火; 긴 강에 뜬 고기잡이 등불)’, ‘효봉견화(曉峯鵑花; 새벽녘 봉우리에 핀 진달래 꽃)’, ‘협간앵류(挾涧鶯柳; 산골 계곡의 꾀꼬리와 버드나 무)’, ‘백일홍수(百日紅樹; 한 여름날 백일홍나무)’, ‘삼동 백설(三冬白雪; 겨울에 내리는 흰 눈)’이다.

    여기서 읊어진 경관요소들을 물리적 경관인 경물(景 物)과 일시적 경관인 경색(景色)으로 구분하였는데6), 경 물은 다시 자연과 인문 경관요소로 분류하고, 경색은 계 절, 시간, 기상과 기타로 분류하였다(Table 1 참조). 입산 마을의 자연 경관요소로서 산언덕, 산봉우리, 계곡, 하천, 평야와 같은 산천과 대나무숲, 소나무숲 등 울창한 숲과 오동나무, 반송, 향나무, 버드나무, 목백일홍, 진달래꽃 등 구체적인 전통수목이 읊어졌다. 인문 경관요소에는 마을, 경작지, 우물, 샘이 포함되었다. 이들은 봄, 여름, 겨울과 밤, 저녁, 낮, 새벽 등 일정한 계절 및 시간에 비, 바람, 눈, 노을과 같은 기상 현상과 어우러진 경관이었으 며, 물소리, 꾀꼬리소리, 노랫소리 등 청각적 경관과 농 사짓고 나물 캐고, 고기 잡는 행태가 어우러졌다. 실제 입산마을 뒤편 장백산에는 취나물, 고사리 등 산나물이 자생(Kim et al., 2008:19)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경관은 시를 읊은 공간인 고산재에서 보이 는 근경의 식생경관에 집중되었으며, 고산재에서 볼 수 없으나 고산재가 소재한 천룡골과 인근의 장군샘 같은 중경이나 입산마을 내부로서 고산재 반대편 산자락에 입 지한 양지골과 자양동, 범눈깔바위, 그리고 유곡천변 마 을숲, 터안뜰, 여기에 맞은 편 경산마을과 주변 산 등 원 경을 포함한다. 이를 통해서 당시 선비들이 공유하였던 입산마을의 영역과 승경의 대상을 이해할 수 있다. 즉, 마을 입지를 통해서 자연적으로 확보한 산천의 지리적 환경에 더하여 생활 속에서 인문적으로 덧대어진 경관요 소들이 입산마을의 원형경관을 구성하고 있었다.

    2)자연 경관요소 분석

    고산재십육경과 기타 관련 기록을 통해서 입산마 을의 자연 경관요소 16개를 추출하였다(Table 2, Figure 6 참조). 이들을 산(山), 봉(峰), 평야, 하천, 계곡, 샘[泉] 등 산천(山川)에 해당하는 경관요소와 마을숲, 어귀숲, 상징목, 완충 및 경관림 등 식생 경관요소로 분류하고, 각각의 경관적 의미에 대해 해석하였다.

    ①산천

    입산마을은 뒤쪽으로 산, 앞쪽으로 물이 흐르는 전형 적 배산임수(背山臨水) 입지이며, 하천과 마을 사이에 형성된 넓은 평야인 터안뜰(Figure 6-KSRP-24-113_SQ5.gif)은 먹고살기 좋 은 곳임을 짐작할 수 있다. 입산마을의 사방을 둘러싼 산세는 비교적 낮고 온화한 지형을 보이는데, 예로부터 매화낙지(梅花落地) 형국의 길지(吉地)7)라고 전해진다. 마을 뒤편에 병풍처럼 둘러진 방개봉[장백산, Figure 6- KSRP-24-113_SQ1.gif]은 풍수지리 상 주산의 역할을 하는데, 지층기반이 석산(石山)이어서 소나무류가 주요 군락(Kim et al., 2008 : 19)을 이룬다. 마을의 상대적 전면이라고 할 수 있는 유곡천 건너편 동쪽에는 안산(案山)이 자리 잡고 있는데, 제일 높은 봉우리는 지도상 공식 명칭으로 응봉(鷹峰, 매봉산, Figure 6-KSRP-24-113_SQ2.gif)이라고 불린다. 마을사람들에 의하면 속칭 기러기 또는 학을 닮은 길상으로 인식되며 마을 어 디에서나 조망되는 주요 랜드마크이다.

    마을 북쪽으로 방개봉의 좌측 지맥이 길게 뻗었는데, 그 형상이 용과 닮았다하여 끝자락을 용머리로 인식하며 풍수적으로 좌청룡에 해당한다(Figure 6-KSRP-24-113_SQ3.gif). 마을 고령자 들의 말에 의하면 마을 남쪽 지맥은 산 중턱에 평탄한 부지가 있어서 예전부터 사람들이 모여 화전(花煎)놀이 를 하던 장소라고 전해진다. 산 끝부분에 돌출된 범눈깔 (범눈알) 바위(Figure 6-KSRP-24-113_SQ4.gif)가 있어서 풍수적으로 우백호 에 해당하며, 남쪽 마을 어귀의 상징적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마을 앞 유곡천(Figure 6-KSRP-24-113_SQ6.gif)은 조선시대 세간천(世干 川, 세간도랑)으로 불렸는데8), 마을의 풍수적 명당수(明 堂水)이자 실용적 농업용수로서 중요하게 여겨졌다. 유 곡천이 서남쪽에서 동북쪽으로 흐르는 역수(逆水)라서 위대한 인물 아니면 역적이 날 것이라는 풍수지리설을 뒷받침하듯 역사적으로 큰 자취를 남긴 인물9)이 많이 배출되었다.

    한편 마을에 흐르는 개천 중에서 북쪽의 천룡골과 남 쪽의 양지골에 형성된 계곡의 물길이 중요하게 인식되었 으며, 모두 동쪽에 흐르는 유곡천에 합류한다. 천룡골은 용머리 지맥을 따라 가늘고 길게 흐르는 계곡이 용의 형 상이라 하여 이름 붙여졌는데, 수량은 작지만 골짜기가 깊고 경관이 뛰어나 탐진 안씨의 별서이자 서당인 고산 재가 들어섰다. 또한 천룡골 고산재 뒤편 방개봉 산자락 에 탐진 안씨가 정착하기 이전에 한 장군이 마셨다는 전 설이 얽힌 장군샘[泉, Figure 6-KSRP-24-113_SQ9.gif이 있는데, 이는 고 산재십육경의 석천으로 추정된다. 양지골은 마을 어귀 의 빨래터 상류에 형성된 골짜기이며, 마을의 식수원으 로 중요시 된 우물 2개소가 남아있다. 이 일대를 자양동 (紫陽洞, Figure 6-KSRP-24-113_SQ8.gif)이라고 했으며 우물 옆에 바위글씨 가 남아있는데, 이곳의 계곡은 마을 아녀자들이 목욕하 던 장소라고 전해진다(Kim et al., 2008:22). 마을에서 천 룡골이 경관적·상징적 장소라면 양지골은 생활과 밀접한 실용적 장소로서 의미가 있다.

    ②식생

    현재 유곡천은 직선 제방을 높게 쌓아 단순한 형태를 보이지만, 예전에는 유로의 변동이 심한 곡류하천이었다 (Figure 4 참조). 주거지와 유곡천 사이에 형성된 들판을 경작지로 삼은 마을 사람들은 유곡천의 범람과 싸우며 조 금씩 제방을 쌓았고 농토를 넓혀서 지금의 터안뜰을 확보 했을 것이다. 제방에는 유곡천의 범람과 둑의 유실을 막 기 위해 소나무를 식재하여 마을숲을 조성하였다. 마을숲 은 기능적 역할 외에도 풍수적 비보림(裨補林)10)으로서 마을의 기운을 가두고, 역수인 유곡천의 수구막이가 되었 다. 마을 고령자들의 말에 의하면 예전에는 제방의 대부 분에 소나무숲(Figure 6-❶)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마을을 지켜왔던 소나무숲은 거듭된 제 방의 증축에 의해 현재는 몇 그루만 남아있다.

    한편 마을의 어귀 공간에는 정자목을 심었는데, 남쪽 어귀에는 느티나무 숲(Figure 6-❷)을 조성하였으며, 북쪽 어귀에는 느티나무와 팽나무를 섞어 심어 숲(Figure 6-❸) 을 조성하였다. 특히 북쪽 어귀의 숲은 좌청룡인 용머리 부분이 짧은 것을 풍수적으로 비보하기 위해 심었다(Kim et al., 2008:23)고 하며 함부로 베지 못하게 하였다.

    마을에는 농촌 마을에 필수적 시설들이 곳곳에 배치 되었는데, 이들 옆에는 독립수를 심어 공간적 의미를 제 고하였다. 마을 빨래터에는 왕버들나무(Figure 6-❺), 연 자방앗간 옆에는 은행나무(Figure 6-❹)를 심었으며 고목 으로 남아있다. 마을 주거지에 입지한 주요 건축물인 고 택, 사당, 재실의 후원에는 대나무숲(Figure 6-❻)을 조성 하여 기능적으로 바람을 막으면서 아늑한 경관을 만들었 다. 또한 마을 입구의 정려각 뒤편 사면에 향나무숲 (Figure 6-❼)을 조성하여 배경식재로 삼은 것은 드문 사 례로 주목된다.

    3)인문 경관요소 분석

    관련 기록에서 입산마을의 인문 경관요소 25개를 추 출하였다(Table 3, Figure 7 참조). 이들을 차별화된 기능 에 따라서 고택과 마을길로 구성된 주거 공간, 별서와 서당의 수기(修己) 공간과 정려, 비각, 사당, 재실의 의 례 공간, 농업 생산과 공동체 생활 공간, 학교, 공원, 조 합을 포함하는 근대 교육·계몽 공간으로 구분하였으며, 각각의 경관적 의미에 대하여 해석하였다.

    ①주거 공간

    입산마을의 고택은 1900년대 초에 건립된 것들로서 근대 초기 부농주택의 실용적 변화 과정을 잘 보여준다. 탐진 안씨 종가인 지헌고택(止軒古宅, Figure 7-KSRP-24-113_SSQ1.gif)을 비 롯하여 백산고택(Figure 7-KSRP-24-113_SSQ2.gif), 신원당(愼遠堂; 근산고택, Figure 7-KSRP-24-113_SSQ3.gif), 의암고택(Figure 7-KSRP-24-113_SSQ4.gif), 한뫼고택(Figure 7- KSRP-24-113_SSQ5.gif), 안범준가옥 등 여섯 채의 한옥이 남아있으며, 이들 가운데 1903년 건립된 신원당은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형태와 구조에 있어서 다른 가옥들의 원조로 여 겨진다.

    신원당은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안채와 부 엌, 오른쪽으로 사랑채와 누마루가 결합되어 있는데, 안 채의 앞쪽으로 주로 노비들이 기거했던 초가 별채를 두 고 있다. 이러한 가옥구조는 이후 건립되는 종가11)와 백 산고택 등 입산마을의 다른 한옥들에서도 공통적으로 확 인되는 특징적 현상이며, 우리 주거사에서 근대 초기를 특징짓는 주요 지표(Lee, 2001:112)라고 평가된다. 한편 입산마을 가옥에서 보이는 기능 통합이라는 근대적 변화 는 외부 공간의 변용과 병행하여 나타났다. 안살림의 기 능이 뒷마당으로 물러나 장독대와 세간이 안채 측면이나 후면에 위치하게 되었으며(Lee, 2001:110), 이렇게 확보된 안마당은 가족 중심공간으로 이용되었다.

    방개산을 등지고 완만한 경사지에 입지한 고택들은 후면에 돌담과 화계를 만들고 대나무숲을 조성하여 후원 으로 삼았다. 고택 마당의 경관처리 기법으로 눈에 띄는 것은 백산고택 마당의 매화나무, 지헌고택 마당의 감나 무와 사당 앞의 매화, 살구나무 등으로 경관성과 실용성 을 겸한 수목을 식재하였다.

    ②수기·의례 공간

    동족촌락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입산마을에서 유교질 서에 따라 선비들의 별서와 서당과 같은 수기공간이 조 성되었다. 1778년 안여석이 뒷산에 세운 고산재(Figure 7- ①)는 고산재십육경의 중심지인데, 1804년 중수하면 서 ‘고산서당’이라고 편액한 후 주민 교육을 담당하였다. ‘설산동문(Figure 7-②)’ 바위글씨는 마을과 고산재로 가 는 길 입구 바위에 새겨진 상징경관 요소이다. 입산마을 에 정자가 두 개 있는데, 1923년 축조한 수파정(守坡亭, Figure 7-③)은 안효제(安孝濟, 1849∼1916)를 추모하는 정자이다. 석축 위에 대숲을 조성한 후원과 배롱나무와 감나무가 식재된 전원이 있다. 근대에 안창제가 세운 송 은정(松隱亭, Figure 7-④)은 근래 외관을 개수하였으나 훼손이 심하다.

    안여석은 1773년 영산현에 있던 칠효정려각(七孝旌閭 閣, Figure 7-KSRP-24-113_SQK1.gif)을 입산마을 입구로 이건하여 동족마을 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입향조 안기종의 유허비를 보호 하기 위하여 만든 비각인 이충각(移忠閣, Figure 7-KSRP-24-113_SQK2.gif) 역시 안익상(安翊相, 1874∼1931)이 안골에서 입산마을 입구로 옮겼다(Kim et al., 2008:159).

    입산마을의 의례 공간으로서 충효사(Figure 7-KSRP-24-113_SQK3.gif)는 문 중 사당이며, 그 앞의 상로재(Figure 7-KSRP-24-113_SQK4.gif)는 1772년 안여 석이 만든 문중 재실이다. 마당에는 타원형 지당이 있는 데 문중의 안명달씨 증언에 의하면 원래 전통적 기법의 석축 호안이었으나, 근래에 견치석 호안으로 보수되었다 고 하며, 느티나무 고목 2주가 있다.

    ③공동체 생활 공간

    조선시대는 농업을 기반으로 한 자급자족 사회였으므 로 입산마을에도 농업생산에 필요한 시설이 있었다. 먼 저 유곡천변에 있던 물레방아는 마을사람들이 종중에 이 용료를 내고 사용했다고 전해지는데, 현재 멸실되었다. 연자방아가 있던 곳에는 은행나무 정자목(Figure 7-KSRP-24-113_SSQB.gif)이 남아있다. 또한 조선말기에 낙동강의 범람에 대비하여 유곡천변에 제방을 쌓고 내부의 넓은 습지를 경작지로 개간하였다(Kim et al., 2008:51). 과거의 제방은 일부 구 간만 남아있다.

    그밖에 마을 공동체의 생활공간으로서 빨래터(Figure 7-KSRP-24-113_SSQD.gif)가 마을 입구에 있으며, 왕버들나무가 심겨졌다. 마 을의 전통적 상수원이었던 우물(Figure 7-KSRP-24-113_SSQE.gif)은 자양동 계곡 내 2개소가 있는데, 향나무 고목이 남아있으며, 물 은 철분을 함유하여 자줏빛을 띤다고 전해진다. 마지막으 로 조선후기 이후 물품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근대기에 인 근 마을과의 사회적 교류 공간으로서 마을 남쪽 삼거리에 마을 장터(Figure 7-KSRP-24-113_SSQF.gif)가 있었다고 하나 멸실되었다.

    ④근대 교육·계몽 공간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에 의해서 교육과 계몽을 위한 공간들이 만들어졌는데, 입산마을에는 1908년 안희제와 안효제가 주도하여 상로재에 창남학교(刱南學校, Figure 7-ⓐ)를 세웠다. 이후 1920년 경 안희제가 ‘입산학원(立 山學院)’ 혹은 ‘입산강습소’라고 불렀던 학교를 만세운 동 터(Figure 7-ⓒ)에 신축하였으나 현재 멸실되었다. 이 러한 근대 교육·계몽의 분위기에서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그 장소를 기념하여 식재한 느티나무 고목이 남아있다. 1954년까지도 입산초등학교의 전신인 입산간 이학교가 있었다. 그밖에도 1929년 농민운동과 청년운동 성격으로서 안균(安均, 1905∼1982)과 안상록(安相祿) 등이 주도하여 최초 농민조합인 낙동강농민조합본부를 설립하였다(Kim et al., 2008:79-85). 1931년 신축했던 6칸 기와집은 문중의 안명달씨 증언에 의하면 1960년대 말 사라지고 현재 오래된 소나무숲(Figure 7-ⓓ)만 남아있다.

    3.입산마을의 중층적 경관 특성

    앞에서 해석한 입산마을의 자연 경관과 인문 경관요 소들을 총괄하여 살펴보면(Figure 8 참조), 시간에 따른 역사적 층위와 기능에 따른 공간적 층위를 포괄하고 있 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입산마을의 중층적 경 관 특성을 정리하고자 한다.

    먼저 입산마을의 자연 경관요소로서 산과 하천, 식생 은 전통적 풍수지리 원칙에 따른 입지와 마을구조의 근 간을 이룬다. 여기에 ‘설산’이라는 마을 이름을 ‘입산’으 로 바꾸고, 주산인 방개봉의 지맥을 용의 형상으로 인식 하여 ‘천룡골’, 방개봉 우측에 돌출된 지형을 ‘범눈깔바 위’라고 이름 붙여서 용과 호랑이라는 범상치 않은 대상 으로 인지하였다. 또한 풍수적 길지인 매화낙지 형국의 마을 터 맞은편 안산 앞에 흐르는 유곡천 제방에 소나무 숲을 둘러 안대를 만들었으며, 방개봉의 지맥을 대나무 숲으로 보완하고, 마을의 심리적 경계부에는 팽나무, 왕 버들나무, 느티나무로 어귀숲을 조성하였다.

    이렇게 자연이 제공한 지리적 형상에 풍수적 해석을 덧붙인 바탕 위에는 생산공간으로서 경작지를 보호하기 위한 제방을 쌓고 농사에 필요한 물레방아, 연자방아를 설치하였으며, 일상적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우물과 빨 래터를 천룡골과 양지골 계곡의 수원을 이용하여 배치하 였다. 또한 마을로 진입하는 삼거리에 물물 교환과 매매 를 위한 마을장터가 형성되었다.

    더불어 조선시대 공간 질서의 규범으로 공유되었던 유교적 위계에 따라서 종가의 입지를 시작으로 주거지가 배치되었고, 정려와 비각, 사당과 재실, 별서와 서당이 자리 잡았다. 주요 진입부에 ‘설산동문’이라는 바위글씨 로 마을의 영역을 표시하고, 일대의 승경에고산재십육 경을 설정하여 향유하였다. 이렇게 완성된 마을의 유 교적 상징 경관 중 일부는 일제강점기에 전환기를 맞이 하였다. 탐진 안씨의 계몽적 성향에 따라서 문중 재실인 상로재는 근대적 학교로 사용되었고, 나라의 독립을 외 쳤던 만세운동 터에 새로운 근대 학교가 들어섰으며, 개 혁적 성향을 띤 입산마을 사람들은 최초의 농민조합을 설립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이상을 정리하면, 입산마을은 ‘자연적 지리·풍수 경관’, ‘농촌의 생산·생활 경관’, ‘유교적 의례·상징 경관’, ‘근대 적 교육·계몽 경관’이 중첩된 경관을 가진다(Figure 9 참 조). 여기서 입산마을을 구성하는 경관요소들이 복합적 기능을 지니면서 상호 연계되는데, 이를 몇 가지 경관요 소로 설명할 수 있다. 먼저 창녕으로 가는 길목의 용머 리라는 풍수적 형상의 산자락에 마을숲과 바위글씨로 입 구의 상징성을 부여하고, 남쪽의 마을 진입공간에 배치 된 칠효정려각과 이충각 뒤편에는 향나무숲을 조성하여 유교문화를 근간으로 장소성을 표현하였다. 또한 양지골 계곡에 ‘자양동(紫陽洞)’이라는 영역을 설정하고 실용적 우물 주변에 향나무를 심은 후 ‘정상노회(井上老檜)’라는 승경을 공유하였다. 농업 생산을 위한 경작지 터안들도 ‘광야농가(廣野農歌)’라고 읊었으며, 풍수적으로 배치된 소나무숲 역시 제방을 보호하는 실용적 기능과 함께 ‘소 송모설(踈松暮雪)’이라고 하여 겨울철 눈이 쌓인 경관을 즐겼다. 사람들이 모이기 좋은 위치에 설정된 마을 장터 부근은 마을 사람들이 함께 만세를 부르는 공간이 되었 고, 이후 근대 교육기관인 입산학원이 세워졌다.

    살펴본 바와 같이 입산마을은 자연이 제공한 풍토를 기반으로 하여 경관을 보완하면서 심리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도록 풍수 경관을 완성하고, 실용적 측면에서는 먹 거리를 얻기 위한 농촌의 생산과 공동체의 생활 경관을 갖추었다. 더불어 조선시대 유교적 규범을 따른 공간구 조 및 의례 시설의 배치와 함께 개화기 근대 교육과 계 몽을 위한 시설들이 도입되면서 입산마을의 중층적 경관 이 형성되었다.

    III.결 론

    본 연구는 입산마을이 근대기 항일 역사라는 컨텐츠 로 대표되는 사실을 넘어 입산마을의 경관적 가치를 제 시하였다. 즉, 약 450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역사적 인물 들의 경관 경영, 사회적 행태와 문화가 누적된 공간으로 이해하였다. 결과물로 남겨진 자연·인문 경관요소들을 해석하여 입산마을의 중층적 경관 특성을 정리하였으며, 연구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임진왜란 직전 탐진 안씨가 거주하기 시작한 입 산마을은 자연이 제공한 배산임수의 터에 전통적 질서를 따른 주거지와 길 체계가 유기적으로 배치된 전형적 농 촌마을이었으나 20세기에 제방 축조, 신작로 개설, 경지 정리 등에 의하여 경관이 전반적으로 변화되었다.

    둘째, 18세기에 기록된 고산재십육경의 분석을 통해서 산과 계곡, 하천과 평야 등 자연과 전통수목이 만드는 식생경관과 함께 마을, 우물, 샘 등 인문 경관, 그리고 계절, 시간, 기상현상, 소리, 행태 등 일시적 경관 이 어우러진 원형경관을 파악하였다.

    셋째, 입산마을을 구성하는 산천과 식생 등 자연 경관 요소 16개와 주거 공간, 수기·의례 공간, 공동체 생활 공 간, 근대 교육·계몽 공간으로 구분된 인문 경관요소 25 개를 추출하고 경관적 의미를 해석하였다.

    넷째, 경관요소들의 복합적 기능과 상호 연계성에서 기인하는 입산마을의 중층적 경관을 ‘자연적 지리·풍수 경관’, ‘농촌의 생산·생활 경관’, ‘유교적 의례·상징 경관’, ‘근대적 교육·계몽 경관’으로 이해하였다.

    본 연구는 입산마을의 경관적 정체성을 네 가지 중층 적 경관으로 설명력 있게 도출했다는데 의의를 지니며, 새롭게 정리된 입산마을의 경관요소와 함께 향후 ‘일반 농산어촌개발사업’ 등에서 마을의 경관 보전·관리 및 지 역 관광자원으로서의 활용 방안 모색 시 중요하게 고려 되기를 기대한다. 단편적 예시지만, 원형경관인 고산 재십육경에서 언급된 오동나무, 반송, 향나무, 버드나 무, 목백일홍, 진달래꽃은 입산마을에 도입될 수 있는 구 체적 식생 정보가 될 수 있다. 또한 기존 마을단위 개발 사업에서 신규 시설에 집중하였던 경향을 지양하고 경관 의미가 복합된 만세공원, 방앗간, 마을숲과 같은 장소의 우선적인 복원과 활용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 논문은 2016년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대학회계 연구비 지원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Figure

    KSRP-24-113_F1.gif

    The location of study site

    KSRP-24-113_F2.gif

    The development of inner roads and residential area

    Source : 1:25,000 Disital map(NGII; 2017), Retouched.

    KSRP-24-113_F3.gif

    The change of outer roads of Ipsan Village

    Source : 1:50,000 Topographic map(NGII).

    KSRP-24-113_F4.gif

    The trace of outer roads of Ipsan Village

    KSRP-24-113_F5.gif

    The cover of 「Gosanhansa」 and the original text of 「Gosanjaesipyukgyeong」

    KSRP-24-113_F6.gif

    The current photos of natural landscape elements of Ipsan Village

    KSRP-24-113_F7.gif

    The current photos of landscape elements of Ipsan Village

    KSRP-24-113_F8.gif

    The distribution map of landscape elements of Ipsan Village

    Source : 1:25,000 Digital map(NGII; 2017), Retouched.

    KSRP-24-113_F9.gif

    The over-layered landscape concept map of Ipsan village

    Table

    The analysis of landscape elements at ⌈Gosanjaesipyukgyeong˩

    The analysis of natural landscape elements of Ipsan Village

    A: Uiryeong-gun History(宜寧郡誌), B: Uiryeongnujeongnok(宜寧樓亭錄), C: http://www.uiryeong.go.kr, D: The History and Culture of Ipsan Village, E: Gosanhansa(高山閒史) & Yeonpajip(淵坡集), F: Sinjeungdonggugyeojiseungnam, G: Topographic Map, H: Engraved Letter, I: Interview

    The analysis of landscape elements of Ipsan Village

    A: Uiryeong-gun History(宜寧郡誌), B: Uiryeongnujeongnok(宜寧樓亭錄), C: http://www.uiryeong.go.kr, D: The History and Culture of Ipsan Village, E: Gosanhansa(高山閒史) & Yeonpajip(淵坡集), F: Sinjeungdonggugyeojiseungnam, G: Topographic Map, H: Engraved Letter, I: Interview

    Reference

    1. AnB. N. Yeonpajip(淵坡集),
    2. AnY. S. AnD. W. AnD. S. Gosanhansa(高山閒史),
    3. Dong-a IlboDong-a Ilbo (1938)
    4. Gyeongsang National University, Department of Archive and Special CollectionsGyeongsang National University, Department of Archive and Special Collections http://nmh.gnu.ac.kr
    5. Institute for the Translation of Korean ClassicInstitute for the Translation of Korean ClassicKorean Classic General DB, http://db.itkc.or.kr
    6. KimD.Y. (2017) A study on the characteristics of landscape application of historic and cultural resources in ‘cultural historic village’ project, Masters’ Thesis, University of Seoul,
    7. KimJ.H. KimG.S. ShinE.J. (2008) The History and Culture of Ipsan Village., Uiryeong Culture,
    8. ChoiJ.H. (2000) A study on Annchook’s view of the scene - on the Kwundongbyulkok. , Journal of Korean Institute of Traditional Landscape Architecture, Vol.18 (2) ; pp.52-61
    9. LeeG.M. (2001) A study on the characteristics of wealthy rural house in Cheon-nam region in the early modern era, Masters’ Thesis, Seoul National University,
    10. LeeH.K. (2009) Indicator development and its evaluation to manage performance of ‘cultural historic village’ project : focusing on 13 cultural historic village, Masters’ Thesis, University of Seoul,
    11. LeeS.W. (2007) A study on the architectural characteristics of the wealthy farmhouses in Ipsan village, Uiryeong Area, Masters’ Thesis, Kyungnam University,
    12. NGIINGII http://www.ngii.go.kr
    13. Rural Areas Information ServiceRural Areas Information Service http://www.raise.go.kr
    14. ShinS.S. (2007) Searching for Korean Traditional Villages and Cultural landscapes., Daega,
    15. (1530) Sinjeungdonggugyeojiseungnam(新增東國輿地勝覽, 1530), Vol.31
    16. Uiryeong-gunUiryeong-gun http://www.uiryeong.go.kr
    17. Uiryeong-gun History Compilation CommitteeUiryeong-gun History Compilation Committee (2003) Uiryeong-gun History(宜寧郡誌),
    18. Uiryeong Culture (1997) Uiryeongnujeongnok(宜寧樓 亭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