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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N : 1225-8857(Print)
ISSN : 2288-9493(Online)
Journal of Korean Society of Rural Planning Vol.23 No.3 pp.83-96
DOI : https://doi.org/10.7851/Ksrp.2017.23.3.083

A study on the Archetypal Landscape of Suseungdae Area in Geochang-gun as Regional Tourism Resources

Eui-Je Lim, Hyun-Su So*
Dept. of Landscape Architecture, Gyeongnam National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Dept. of Landscape Architecture, The University of Seoul
Corresponding author: So, Hyun-Su 02-6490-2848hsso@uos.ac.kr
20170719 20170811 20170820

Abstract

This study aims to contemplate the archetypal landscape of a scenic site, Suseungdae area in Hwangsan-maeul village, Geochang-gun by reference research and field surveys and drew the results as follows. First, Since Seong Yundong(成允仝; 1450-1540) embarked on operating the Suseungdae in Eonari(魚川) in 16th century, Shin Gwon(愼權, 1501-1573) and Im Hun(林薰, 1500-1584) took a major role of establishing the archetypal landscape of the area. Henceforth, numerous scholars had kept exploring the scenery and completing the archetypal landscape of the area until the 19th century. Second, the locations of 50 archetypal landscape elements, including 「Guyeon-dong sipgugyeong(龜淵洞十九景)」 which are dispersed along the Wicheon, has been identified. On the base of this, the archetypal landscape of Suseungdae area is figured out as the ‘Guyeon-dong(龜淵洞)’ area coming down from ‘Cheoksuam(滌愁巖)’ to ‘Byeoram(鼈巖)’. Third, many archetypal landscape elements are from the locations along the river. Among them, the ones named with rock: Am(巖) and Seok(石), which are shapes of turtles or terrapins, take the high rate and so do the ones named with ‘Dam(潭)’, which are waterscape. Fourth, among the cultural landscape elements, there are many garden structures such as Nujeong(樓亭) and Seowon(書院), which are located at the spots of viewing the landscape and the structures like banks, bridges and dams are also included. Furthermore, the letters engraved on the rocks are mainly about the landscape elements and are sometimes about the records of building and operating the landscapes by the people who were appreciating the arts and nature. Based on the range and characteristics of the archetypal landscape in Suseungdae area from this study, it is needed to take follow-up studies on the guidelines for efficient management by means of classifying the detailed fields so that there are no negative factors conflicting with the adjacent land use.


지역 관광자원으로서 거창 수승대 일원의 원형경관 고찰

임 의제, 소 현수*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조경학과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초록


    Gyeongnam National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I.서 론

    1.연구의 배경과 목적

    거창군 위천면 황산마을에 위치한 ‘수승대(搜勝臺)’는 원래 하나의 바위를 지칭하는 이름이지만 ‘거창 수승대’ 는 2008년 명승으로 지정된 자연유산으로서 일대의 수 려한 계곡 경관을 포괄한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영남 제 일의 동천(洞天)으로 향유하였던 ‘안의삼동(安義三洞)1)’ 중 하나인 원학동(猿鶴洞) 계곡에 입지한 커다란 거북 모양의 바위가 신령스러운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주변에 정자와 서원까지 갖추어 조선시대 산수유람 문화의 진수 를 누렸던 곳이다(Kim, 2008:24). 수승대는 1982년에 국 민관광휴양지로 지정되었는데, 이를 대변하듯이 수승대 홈페이지에서 주요 이용시설로 야외수영장, 썰매장, 야영 장, 오토캠핑장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1995년부터 매년 7∼8월경 수승대 일원에서 거창국제연극제가 개최되는 데, 이를 위해서 수변에 야외무대와 스탠드가 설치되었 다. 거창국제연극제는 여름 피서철에 맑은 계곡의 물놀 이에 예술·문화 컨텐츠가 결합됨으로써 성공적인 지역문 화축제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부가된 시설과 공간은 수승대 일원에 산재한 거북바위, 관수루(觀水樓) 와 구연서원(龜淵書院), 요수정(樂水亭), 함양재(涵養齋) 등의 역사문화자원과 이질적 경관을 양산한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2) 이렇게 명승 지정 구역 안에서 이루어지 는 현대인의 위락 행태는 선조들이 물려준 자연경관과 문화유산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자원으로서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해당 문화재의 원형경관을 파악하는 일이 우선 되어야 한다. 특히 단일 개체의 점적 문화재와 달리 일 정 영역을 대상으로 하는 명승의 경우, 원형경관 요소들 을 파악하여 보존 구역 지정 및 문화재 관리에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명승의 가치는 그 안에 포함된 유무형 의 경관자원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본 연구는 인위적 경관 변화가 발생하기 전으로서 조선 시대까지 축적된 수승대 일원의 원형경관을 고찰하려는 목적을 지닌다. 이를 위해서 원형경관 요소들을 파악하 고 경관적 특성을 도출하여 선조들이 주어진 자연경관을 어떻게 승경으로 인식하였는지 이해하며, 연구의 결과를 통해서 수승대 일원의 경관 보존 대상과 범위를 명확하 게 규정함으로써 앞으로 명승 수승대를 지속가능하게 관 리하여 방문자들에게 보다 풍부하고 진정성 있는 체험을 제공하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수승대를 대상으로 한 연구로서 가장 먼저 Kang(2002) 이 관광자원화를 목적으로 하여 안의삼동의 누정과 경승 자원들을 제시하였으며, 다음으로 Kim(2008)이 원학동의 역사문화자원들을 소개하였다. Oh(2010)는 향토사학자로 서 명승 수승대의 경관과 관련 인물들을 조사하여 그 가 치와 의미를 알리는데 기여하였으며, 본 연구 진행 과정 에서 기초적인 단서를 제공하였다. Choi(2015)는 이황, 조식, 최익현 등 조선의 명사들이 찾은 원학동의 역사문 화적 의미를 고찰하였다. 또한 Yi and Ryu(2013)는 요수 정, 함양재, 관수루에서 수승대를 향한 조망을 고려하여 보호구역의 범위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하였다. 이것은 바람직한 명승 관리를 위해서 수승대 일원의 원 형경관 요소를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본 연구의 목 적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최근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2016)는 수승대를 포함한 안의삼동 일원의 명승들에 대한 실태를 파악하고 정비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이 연구는 파편화된 안의 삼동 일원의 원형을 파악하기 위해서 방대한 분량의 문 헌 연구부터 실측에 이르는 면밀한 조사·분석을 통해서 학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성과로서 의미가 있다. 역 사자원 하나하나의 점적 요소가 아니라 안의삼동이라는 면적 영역으로 이해하였다는 점에서 본 연구와 유사한 인식을 가지고 있으나 연구 결과는 수승대 일원에서 관 수루, 요수정, 척수암, 구연이라는 일부 경관 요소에 한 정되었다. 본 연구는 기존의 수승대 연구에서 주목하지 않았던 구연동십구경(龜淵洞十九景)을 포함하는 다양 한 경관 요소의 위치를 확인하고 그 경관적 특성을 파악 함으로써 수승대 일원에 집중된 원형경관을 이해하였다 는 차별성을 지닌다. 이를 통해서 거창 수승대 보존관 리 종합정비계획(2010)에서 원형경관에 대한 면밀한 고 찰 없이 보존을 위한 문화재 지정구역 확대를 제안하고 현황을 기준으로 하는 보존정비 방안을 제시한 결과를 개선할 수 있다는데 본 연구의 의의가 있다.

    2.연구의 범위와 방법

    본 연구의 공간적 범위는 경남 거창군 위천면 황산마 을에 위치한 수승대 일원으로서(Figure 1 참조) 2008년 12월 26일 거창 수승대가 명승 제53호로 지정되면서 한 정된 문화재보호구역 일부를 포함한다. 또한 연구의 시 간적 범위는 ‘수승대’라는 상징적 장소가 인식되었던 삼 국시대 이후 수승대 일원의 원형경관이 형성되기 시작하 였다고 파악되는 16세기부터 문인들의 승경지 경영과 탐 승(探勝)이 이루어진 19세기에 해당되는 조선시대로 한 정한다.

    연구는 1차적으로 문헌 분석을 진행하였으며, 먼저 구연서원지(龜淵書院誌)요수선생실기(樂水先生實 記)에 기록된 구연동십구경의 실체를 확인하였다. 다 음으로 향토 지리지인 화림지(花林誌), 안의읍지(安 義邑誌), 거창군지(居昌郡誌), 위천면지(渭川面誌) 에 수록된 원형경관 요소와 관련 인물의 정보를 추출하 였으며, 거창문화원이 발간한 명승 수승대(2010) 거창군의 마을신앙(2003), 거창의 누정문화(2010)에서 수승대 일원의 원형경관에 대한 정보를 보완하였다.

    문헌 분석을 통해 파악된 정보를 근간으로 하여 한 국고전종합DB에서 수승대와 관련된 주요 인물들의 문 집에 실린 기문(記文), 제영(題詠) 등의 기록을 분석하였 다. 이를 통해 수승대 일원의 경관 경영 및 탐승과 관련 된 인물들이 제시한 경관 요소와 정보를 추출하여 연대 순으로 정리하였다.

    연구의 후속 과정으로 2017년 3월부터 6월까지 7차례 의 현장조사를 실시하였다. 문헌 연구에서 추출한 수승 대 일원 원형경관 요소들의 위치를 비정하여 지형도에 표기하였으며, 사진을 촬영하여 원형경관의 현 상태를 기록하였다. 원형경관의 위치를 파악하는 과정은 ‘수승 대’, ‘요수정’, ‘함양재’와 같이 널리 알려지거나 구조물 로 확인 가능한 것을 먼저 정리한 다음에 현장에서 원형 경관 요소의 명칭이 바위에 각자(刻字)된 19개소의 위치 를 확인하는 순서로 진행하였다. 나머지 원형경관 요소 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아래 예시(화림지형승 (形勝)편)한 바와 같이 각 문헌에 기록된 설명을 근간 으로 하여 수차례의 현장조사와 주민과의 인터뷰를 병행 하였다.

    • 척수암(滌愁巖) : 황산마을에 있다. 암면에 ‘신씨사현 유허동문’이라 새겨져 있다(在黃山 巖面刻 愼氏四 賢遺墟洞門).

    • 야담(夜潭) : 척수암 상류에 있으며 예전에 ‘야천정 사’가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在滌愁巖上 古有夜川 精舍今廢).

    • 자고암(鷓鴣巖) : ‘요수정’의 북쪽 수십 보 거리에 있 다(在樂水亭北數十步).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수승대 일원 원형경관의 위치 와 현 상태를 파악한 후, 세부 원형경관 요소들의 경관 적 특성을 분석함으로써 거창 수승대 일원의 원형경관을 이해하고, 지역 관광자원으로서 향후 보전관리 방향을 제안하였다.

    II.결과 및 고찰

    1.수승대 일원 원형경관의 경영과 탐승

    1)삼국시대의 상징 경관으로서 수송대

    수승대가 입지한 원학동 계곡이 신라와 백제의 국경 지대였기 때문에 이곳은 신라로 가는 백제 사신들을 ‘근 심스럽게 송별하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수송대(愁送臺)’ 라고 불렸다. 이는 수승대가 삼국시대부터 상징적 경관 으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준다. ‘수송대’라는 명칭과 관련 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안의의 구연동은 산수의 뛰어남이 영남의 제일이 다. 그중에 한 바위가 있어 형상이 엎드린 거북 같이 수중(水中)에 일어나니 위에 백여 사람이 앉 을 만하고, 수십 주의 노송이 덮고 있는데, 본래 신라와 백제시대에 사신들이 서로 송별하던 곳으 로 수송대라 전해왔다.’3)

    ‘수승대의 옛 이름은 수송이며 유래는 잘 알지 못 한다. 혹 이르기를 신라와 백제 때 양국의 사신이 서로 보내며 그 시름을 이기지 못한 연유로 그리 칭하였다.’4)

    2)조선시대 전기의 수승대 경영

    수승대가 문헌 기록에 나타나고 주목받기 시작한 것 은 조선 전기의 여러 명망있는 학자들의 소요처로 회자 되기 시작한 이후이다. 수승대의 경관을 처음 경영했던 이는 무신이었던 척암(滌庵) 성윤동(成允仝, 1450-1540) 이다. 그는 1490년대 초에 함양 백전면에서 안의 황산으 로 이거하였는데(Wicheonmyeonji, 1998), 수승대 아래 마 을인 ‘어나리(魚川)’에 살면서 수승대 일대의 경관을 즐 기며 소요하였다. 수승대 바위와 관련하여 ‘옛날 성윤동 병마사가 돌을 쌓아 사다리를 삼았으며, 또한 축대 위에 는 반송이 천년이 넘었는데, 수승대 위에는 단을 쌓은 것이 있다.’5)는 기록이 있다. 성윤동이 현재 남아있는 수 승대 바위에 오르는 돌계단과 대 위쪽 단을 축조하였다 는 것인데, 이것은 수승대 뒷면에 암각된 ‘척암성공축단 대상방천대하(滌庵 成公 築壇臺上 防川臺下)’라는 글에 서 확인된다. 그러나 기나긴 세월과 함께 계단 층대는 없어지고 대 위의 축단은 근대까지 자연석 축대 그대로 남아 있었으나 1950년대에 와서 모두 헐어버리고 활석 으로 개축하였다(Wicheonmyeonji, 1998).

    ‘방천대하’에서 알 수 있듯이 성윤동은 수승대 아래 마을 앞 개천의 범람을 막고자 어나리에 제방을 축조하 여 치수에도 힘쓴 것으로 보인다. 또한 수승대 상류에 석문을 열어 통행로를 만들고, 척수암에도 길을 열어 행 인들이 쉽게 다닐 수 있게 하였다는 기록6)이 있는데, 성 윤동이 수승대 영역의 북쪽 문인 ‘석문(石門; 門巖, 葛 川洞門)’과 남쪽 문 역할을 하는 ‘척수암’에 처음 길을 낸 것이다. 이것은 수승대를 중심으로 한 ‘구연동’의 영 역을 한정하는 보편적 기준으로 자리매김 하는 중요한 원형경관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수승대 일원을 별서로 경영하고 가꾼 이 는 요수(樂水) 신권(愼權, 1501-1573)이다. 그는 평생 동 안 황산마을에 은거하면서 수승대 일원 원형경관 요소들 의 명칭을 부여하였다. 특히 그가 조영한 인문경관 요소 들은 신권에 의해 수승대가 점유되고 경영된 것이라는 인식을 만들고 있다. 신권은 1540년 수승대 바위 옆에 현재 ‘구연서원’의 전신인 ‘구연재(구연정사)’를 짓고 학 문을 연구하였다. 1541년에는 개천 맞은편에 독서처인 ‘함양재’, 1542년에는 수승대 경관의 중심 누정인 ‘요수 정’을 지으면서 은거지의 기틀을 닦았다. 또한 요수정으 로 가는 길목에 있는 ‘구룡폭’을 건너기 위해 다리를 놓 았는데, 이것이 현재의 ‘구연교’로 복원되었다. 이 밖에 도 신권은 수승대 아래쪽에 ‘구연보’를 만들어 소나무림 인 ‘석송’7)을 조성하고, 그 옆 바위를 ‘영귀정’이라고 이 름을 붙여 쉴 곳8)으로 삼는 등 수승대 일원 원형경관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수승대 바위에 새겨 진 ‘요수선생축단대상방천대하(樂水先生 築壇臺上 防川 臺下)’와 ‘요수단(樂水壇)’이라는 글씨에서 알 수 있듯이 성윤동에 이어 수승대 주변의 경관을 가꾸는데 기여하였 다. 이렇게 신권이 주도적으로 수승대를 경영한 사실은 ‘욕기암’에 새겨진 ‘요수신선생장수동(樂水先生藏修洞)’ 이라는 바위글씨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신권과 동시대 유학자로서 전국적으로 명망이 높았던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은 처가인 수승 대 아래 영승마을에 방문하였을 때 ‘수송대’를 ‘수승대’라 고 개칭하는 역할을 하였다. 기제수승대(寄題搜勝臺)구연서원중건기에 기록된 바와 같이9) 퇴계가 명칭을 변경한 일화로 인하여 수승대가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이후 저명한 학자와 문인들이 다투어 찾는 계기가 되었 다.

    ‘안음 땅 옛 관아 터에 바위가 물가에 임하여 있 는데, 속명이 수송대이고 천석(泉石)이 매우 뛰어 나다고 한다. 내가 가 볼 여유가 없음을 한스럽게 여겼다. 또 그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여 수승으로 바꾸고자 하니 모든 이가 찬성하였다’

    ‘퇴계께서 그 대의 이름이 아담치 못함을 저어하 여 수승으로 고치고 한편 율시를 남기시니 대가 이에 더욱 유명했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정보로서 수승대 바위 전면에 ‘퇴계명명지대(退溪命名之臺)’라고 새겨져 있다. 이후 조선후기의 많은 문인들이 수승대를 탐방한 후 쓴 글이 나 시에서는 ‘수승대’와 ‘수송대’가 함께 사용된다. 이것 은 수승대 바위에 ‘수송대’와 ‘수승대’가 크게 암각된 사 실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은진(恩津) 임씨(林氏) 집성촌인 갈계마을(葛川 洞)은 ‘문암(갈천동문)’을 통해 드나들던 수승대 상류 마 을로서 원학동의 또 다른 승경지였다. 이곳에 살았던 갈 천(葛川) 임훈(林薰, 1500-1584)과 그의 동생 첨모당(瞻 慕堂) 임운(林芸, 1517-1572) 등은 신권과 함께 수승대의 경관을 경영하고 향유하였던 유학자들이다. 이는 수승대 에 새겨진 ‘갈천장구지대(葛川杖屨之臺)’와 ‘요수장수지 대(樂水藏修之臺)’에서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어나리 에서 태어난 성윤동의 손자 석곡(石谷) 성팽년(成彭年, 1540-1594)은 임훈의 제자이자 동계(桐溪) 정온(鄭蘊, 1569-1641)10)의 스승으로서 이들과 함께 수승대와 척수 암에서 소요하며 일생을 보냈다.

    수승대 영역의 입구이자 남문인 ‘척수암(요수동문)’에 새겨진 ‘신씨사현유허동문(愼氏四賢遺墟洞門)’은 신권을 비롯하여 청송 신복행(愼復行, 1533-1624), 야천 신복진 (愼復振, 1536-1619), 황고 신수이(愼守彛, 1688-1768)를 가리키는데, 신권 이래 거창 신씨 가문의 수승대 경영과 관련된 주요 인물들이다. 신복행은 현재 구연서원 입구 에 이건된 ‘청송당’을 짓고 독서하였으며, 신수이는 신 권, 성팽년과 더불어 구연서원에 배향된 삼선생(三先生) 이라고 불리는 학자이다. 특히 신복행은 수승대의 원형 경관 요소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인물인데, 구연동 영 역의 북쪽 ‘별암’ 위 절벽에 새겨진 ‘야천대’와 ‘야천신 선생유허동(夜川愼先生遺墟洞)’에서 그의 자취를 찾을 수 있다. 또한 그는 신권의 독서처인 ‘함양재’ 아래 ‘복 구암’에 ‘야천정사’를 짓고 별서로 삼았다.

    3)조선시대 후기의 수승대 탐승

    조선 후기 저명한 학자와 문장가들의 수승대 탐승은 수승대 일원의 원형경관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수승대 바위에 새겨진 이름은 약 250여 명에 이르며(Oh, 2010; 95), 시문은 신권, 이황, 임훈을 비롯하 여 20세기 초까지 18명의 명현(名賢)이 지은 27수에 이 른다(Oh, 2010; 76). 이러한 탐승 행위는 수승대가 16세 기 이후 영남지방의 중요한 명승으로 인식되고, 많은 유 학자들에 의해 향유된 경관이라는 것을 설명한다. 또한 이는 수많은 유학자들의 문집에 실린 글과 시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11) 주요 기록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 다.

    천파(天坡) 오숙(吳䎘, 1592-1634)은 유수송대기(遊愁 送臺記)12)에서 원학동 수승대 일원의 경치를 ‘무릉도 원’으로 비유하였으며,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 1664-1732)는 전국의 산수를 유람하고 쓴 기행문인 지 행록(地行錄)13)에서 ‘수승대’와 ‘척수암’의 경치를 칭 송하고 노래하였다.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 1653-1722), 도곡(陶谷) 이의현(李宜顯, 1669-1745), 저촌 (樗村) 심육(沈錥, 1685-1753) 등은 동시대에 수승대를 유람하고 감흥을 시로 읊은 유학자들이다.

    18세기 문장가로 유명한 금릉(金陵) 남공철(南公轍, 1760-1840)은 풍패정기(風珮亭記)에서 수승대의 뛰어 난 경치를 ‘마치 유리세계(琉璃世界)와 같다’고 표현하 였다.14) 유리세계는 빛나는 수석(水石)이 절묘하게 어우 러진 수승대의 절경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또한 추재(秋齋) 조수삼(趙秀三, 1762-1849)은 수승대를 탐승 하고 지은 시 수승대15)에서 당나라의 시인 왕유(王維) 의 유명한 별장인 ‘망천별업(輞川別業)을 보는 것 같다’ 고 표현하였다.

    수승대의 탐승은 19세기 후반까지 이어졌다. 기호지방 의 대학자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 1833-1906)은 수승 대가 영남지방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칭송하는 시 를 남겼다.16) 개항기 순국지사이자 덕유산 자락에서 무 계구곡(武溪九曲)을 경영하였던 연재(淵齋) 송병선(宋秉 璿, 1836-1905)17)유안음산수기(遊安陰山水記)18)에서 ‘척수암’, ‘수승대’를 대표적인 2대(臺)로 칭하고 ‘관수 루’, ‘요수정’ 일대의 경관이 ‘매우 기려(奇麗)하다’고 표 현하였다. 또한 영남의 유학자인 만구(晩求) 이종기(李種 杞, 1837-1902)는 덕유산 일대를 유람하다가 수승대에 이르러 그 승경에 감탄한 소회를 유적상록(遊赤裳錄) 에 다음과 같이 남겨 놓았다.

    ‘수승대에 이르니, 큰 바위 반석이 비스듬히 솟아 올라 엎드린 거북과 같다. 이 개천의 돌들은 여러 가지 형상을 하고 있는데 거북, 뱀, 용, 사자와 같 기도 하고, 포개거나 쪼개고 깎은 것 같다. 즉, 이 대(臺)는 살아 숨 쉬고 듣는 것 같으니 괴이하다.’ 19)

    구한말 문장가인 명미당(明美堂) 이건창(李建昌, 1852-1898)20)수승대기(搜勝臺記)에서 수승대의 유 래와 뛰어난 경치를 기록하였다. 또한 수승대의 소유권 을 두고 신권과 임훈의 후손인 거창 신씨와 은진 임씨 두 집안이 벌이고 있는 세력 다툼을 일러 다음과 같이 꾸짖기도 하였다. 이는 자연경관의 점유에 대한 분쟁의 사례로서 주목된다.

    ‘내가 보기에는 수승대는 물속의 돌덩어리일 뿐, 밭이나 집, 정원과 같이 주인이 있는 물건이 아니 다. 어찌 그것을 두고 송사(訟事)를 다툴 것인가. 나는 이미 그곳의 뛰어난 아름다움을 보았으니, 두 집안의 옹졸함을 가없게 여긴다.’21)

    수승대 상류 ‘자암’과 ‘무오동암’에는 ‘무오동(戊午洞)’ 이라는 명칭과 무오년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33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는 무오년인 1918년 혹은 그 이 전의 무오년과 관련 깊은 인물들의 수승대 탐승과 관련 될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19세기 이후 신권의 9세 손인 구암(龜巖) 신재익(愼在翼)과 11세 손인 남정(藍汀) 신 종식(愼宗軾)은 각각 수승대 상류에 ‘구암’과 ‘남정’이라 는 이름을 붙이고 노닐었으며, 이를 자신의 호(號)로 삼 았다.

    이상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수승대 일원은 삼국시대 때부터 ‘수송대’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으며, 조선시대에 성윤동이 개척한 이래 신권과 임훈을 비롯한 여러 유학 자들의 수승대 경영이 어우러진 결과 원형경관이 형성되 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수승대 일원이 영남의 대표적 승경으로 굳어지게 된 것은 절묘한 산수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16세기 이후 수많은 유학자들이 탐승하고 그 자 취가 누적된 상징적 장소였기 때문이다.

    2.수승대 일원의 원형경관 요소

    1)구연동십구경(龜淵洞十九景)

    현재 ‘구연서원’ 이외에는 사용되지 않는 ‘구연동’이라 는 명칭이 문헌상에 공식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개별적 이름을 붙인 ‘동(洞)’이라는 하나의 영역 개념으로 사용 된 것인데, 이곳에 19개의 경(景)이 설정되었음을 확인하 였다. 즉, 구연동십구경구연서원지요수선생 실기에 기록될 만큼 수승대 일원에서 중요하게 인식되 었던 원형경관 요소라고 할 수 있으나, 지금까지의 명승 지정 논의에서 언급된 바가 없다. 이는 수승대 일원의 원형경관 영역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핵심 정보이다. 구 연동에 설정된 열아홉 가지 승경은 요수정(樂水亭), 욕 기암(浴沂巖), 풍우대(風雩臺), 영귀정(詠歸亭), 반타석 (盤陀石), 연하굴(烟霞屈), 장주갑(藏酒岬), 약어담(躍魚 潭), 구암(龜巖), 별암(鼈巖), 연암(鷰巖), 사암(獅巖), 문 암(門巖), 복암(幞巖), 원타굴(黿鼉窟), 척수암(滌愁巖), 구룡폭(龜龍瀑), 용우암(龍羽巖), 번계천(翻溪川)이다 (Figure 2 참조).

    각각의 경에 대하여 기술된 원문을 토대로 하여 현장 조사를 통해서 확인한 구연동십구경은 위천 변에 설 정되었으며, 하류인 남쪽 척수암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 한 별암까지 약 1,5km에 걸쳐 분포한다. 구연동십구경 중에서 인문경관 요소는 요수정 1개소이며 1805년 복원 시 이건되었다. 1980년대 도로 확장 시 멸실된 ‘문암’을 제외한 나머지 자연경관 요소들은 현존한다. 구연동십 구경에 ‘수승대’가 아니라 수승대 바위 아래쪽 부분을 지칭하는 ‘연하굴’, ‘반타석’, ‘장주갑’이 지정된 점이 주 목할 만하다.

    2)기타 수승대 일원의 원형경관 요소

    앞서 관련 문헌 기록을 토대로 살펴본 ‘수승대 일원 원형경관의 경영과 탐승’에서 알 수 있듯이 구연동 영역 내에는 구연동십구경 이외에 다양한 원형경관 요소들 이 있다. 요수선생실기, 구연서원지, 화림지, 거 창읍지(居昌郡誌), 위천면지(渭川面誌)에서 문인들이 조영한 경관요소들을 추출하여 상류부터 하류 방향의 물 흐름에 따라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야천대(夜川臺), 문암담(門巖潭), 강정모리, 자암(鷓巖), 무오동암(戊午洞 巖), 남정(藍汀), 자고암(鷓鴣巖), 구연교(龜淵橋), 용반 (龍盤), 연반석(硯盤石), 사담(蛇潭), 세필짐(洗筆㴨), 수 승대(搜勝臺), 요수단(樂水壇), 구연(龜淵), 구연보(龜淵 洑), 구연재(龜淵齋), 구연서원, 관수루(觀水樓), 효열각/ 정려각, 청송당(聽松堂), 읍취정(挹翠亭), 석송(䄷松), 함 양재(涵養齋), 야천정사(夜川精舍), 복구암(伏龜巖), 야담 (夜潭), 어나리(魚川), 어나리 제방, 어나리 은행나무, 척 수담(滌愁潭)이 분포한다(Figure 3 참조).

    이렇게 31개소에 이르는 원형경관 요소는 원하리(院 下里) 마을 일대, 수승대 바위와 구연서원 인근, 위천 상 류 모퉁이를 지칭하는 강정모리 일대 하천변을 따라 분 포한다.

    3)수승대 일원 원형경관 요소의 경관적 특성

    위천 변을 따라서 분포하는 수승대 일원의 원형경관 요소들은 구연동십구경을 포함하여 총 50개소의 경관 요소가 설정되었음을 확인하였다(Figure 5 참조). 이들의 경관적 특성을 별칭, 형상, 상징, 바위글씨, 관련 인물과 기타 정보, 현존 상태로 구분하여 정리하였다(Table 1, Table 2 참조). 원형경관 요소들은 자연경관 요소 36개소 (76%)와 인문경관 요소 14개소(24%)로 구분됨으로써 하 천 변 입지를 통해 얻어지는 자연경관이 압도적으로 우 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경관 요소의 대상은 돌로 형성된 모습에 따라 ‘바 위(巖/ 石)’, ‘암벽’, ‘대(臺)’, ‘반석(盤)’, ‘굴(窟)’, ‘갑(岬 : 穴)’, 물의 형태에 따라 ‘천(川)’, ‘짐(㴨)’, ‘연(淵)’, ‘담 (潭)’, ‘폭포(瀑)’, ‘정(汀)’과 식물로 소나무숲과 은행나무 가 있었다. 특히 ‘바위’에 해당하는 원형경관 요소는 11 개소로서 높은 비율을 차지하였다. 물과 관련된 9개소 중에서 호소(湖沼)에 속하는 ‘연(淵)’과 ‘담(潭)’이 6개소 로 많았다. 특히 집중된 ‘담(潭)’은 승경지를 지칭하는 곳에서 자주 나타나는, 하천의 상류에 형성된 자연 못으 로서 경관적, 풍류적 특성을 내포한다(Lim and So, 2016:10).

    자연경관 요소의 상징에서 ‘거북(자라)’, ‘용’, ‘뱀’, ‘물 고기’, ‘자고새’, ‘제비’, ‘사자’ 등 동물이 높은 빈도를 차지하였으며, ‘세필’, ‘벼루’, ‘관(冠)’과 같이 선비와 관 련된 대상으로도 이름 붙여졌다. 특히 ‘수승대(Figure 3- ⑬)’, ‘복구암(Figure 3-㉖)’, ‘욕기암(Figure 2-❷)’, ‘구암 (Figure 2-❾)’, ‘별암(Figure 2-❿)’, ‘원타굴(Figure 2-⓯)’, ‘구룡폭(Figure 2-⓱)’에서 반복된 ‘거북(자라)’은 주로 바 위의 형상에서 비롯된 결과로서 수승대 일원의 경관을 대표하는 상징성을 지닌다.

    인문경관 요소로서 요수정(Figure 2- ❶), 구연재, 구연 서원(Figure 3-⑱), 관수루(Figure 3-⑲), 효열각/정려각 (Figure 3-⑳), 청송당(Figure 3-⑴), 읍취정, 함양재(Figure 3-⑴), 야천정사 등 누정과 서원이 주요 경관 조망점에 분포한다. 이중에서 신권이 조영한 구연재와 수승대 아 래 있었다고 전해지는 읍취정22), 복구암 위에 있었던 야 천정사는 멸실되었다. 그 밖의 구조물로서 요수단(Figure 3-⑭), 구연교(Figure 3-⑧), 구연보(Figure 3-⑯), 어나리 제방(Figure 3-⑴) 등 축대, 교량, 보가 해당된다. 신권이 축조한 것으로 알려진 구룡폭포 위의 구연교는 본래 원 형은 외나무다리였으나(Wicheonmyeonji, 1998), 2006년 수해로 인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석교로 조 성되었으며, 현재 수승대 일원의 자연경관과 이질적 경 관을 제공한다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어 나리(Figure 3-⑴)’ 즉 어천(魚川)은 마을 앞 ‘번계천 (Figure 2-⓳)’에 고기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원학동의 수석(水石)이 신령한 지역으로 편안한 도원’이 라고 표현되었던 마을이다.23)

    한편 원형경관 요소의 명칭 중에서 행위나 의도를 표 현한 것이 주목되는데, ‘수송(근심으로 보냄)’, ‘척수(시름 을 달램)’와 같이 인간의 성정을 대입하거나, ‘요수’, ‘관 수’, ‘욕기’, ‘풍우’, ‘영귀’와 같이 옛 성현의 글귀에서 따온 것24)이 그것이다. 이것은 선비로서 자연에 준거하 며 학문을 탐구하고 수양하려는 의지의 상징적 표현일 것이다.

    구연동 영역 내 원형경관 요소에는 많은 바위글씨가 산재한다. ‘요수정’, ‘욕기암’, ‘풍우대’, ‘영귀정(Figure 2-❹)’, ‘구암정’, ‘야천대’, ‘자암’, ‘무오동(Figure 3-⑤)’, ‘남정(Figure 4-k)’, ‘연반석’, ‘세필짐(Figure 3-⑫)’, ‘석송’, ‘함양재’, ‘야천정사(Figure 4-g)’와 같이 해당 경관 요소 의 이름을 새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경우 바위 글씨는 원형경관 요소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수승대 바위에는 빈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바위글씨가 새겨져 있는데(Figure 4-l), 그 중에서 ‘퇴계명 명지대(Figure 4-b)’, ‘갈천장구지대(Figure 4-b)’, ‘요수장 수지대(Figure 4-c)’는 이황, 임훈, 신권과 같은 중요 인물 들이 풍류를 즐겼던 장소라는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욕기암’에 새겨진 ‘요수신선생장수동(Figure 4-d)’, ‘야천 대’에 새겨진 ‘야천신선생유허동(Figure 4-f)’과 ‘척수암’ 에 새겨진 ‘신씨사현유허동문(Figure 4-h)’도 동일한 맥락 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영귀정’의 ‘요수음영지대(樂 水吟詠之臺, Figure 4-j)’, 수승대 암면의 ‘요수단’, ‘척암 성공축단대상방천대하(Figure 4-i)’와 ‘요수선생축단상방 천대하(Figure 4-e)’라는 바위글씨로 원형경관의 조성 및 경영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그밖에 ‘석문(石門)’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문암’에 는 ‘갈천동문(葛川洞門, Figure 2-⓭)’이라는 바위글씨가 있고, ‘척수암(Figure 2-⓰)’에는 ‘요수동문(樂水洞門)’이 라는 바위글씨가 새겨져 있는 점으로부터 구연동 영역의 경계로서 각각 북문과 남문의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선조들이 인공적 울타리를 조성하지 않 고 자연경관 요소를 이용하여 ‘동천(洞天)’과 같은 특별 한 영역을 한정하였다고 알려진 바와 같다. Figure 5

    수승대와 구연서원 주변 반경 100여 미터 이내에 총 50개소 중에서 33개소의 원형경관 요소가 집중되었는데, 이곳이 구연동의 핵심이라는 점을 파악할 수 있다. 오랜 시간 지속된 물의 흐름이 만든 절벽과 바위 등 승경의 구체적 대상을 제공하는 특별한 경관을 가지는 입지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Lim(2001)은 이러한 곡류하천이 지 니는 특성들이 전통 승경 인식의 단서가 되었다는 연구 결과를 도출한 바 있다. 이것은 원형경관 요소들이 ‘구 암(구암정, Figure 2-❾)+자고암(Figure 3-⑦)+약어담 (Figure 2-❽)’, ‘야천정사+복구암(Figure 3-⑴)+야담(Figure 3-⑴)’과 같이 자연 조망을 위한 건축이 가능한 평평한 터를 제공하는 절벽과 바위, 그리고 아래쪽 깊숙한 물웅 덩이가 하나의 경관 패키지를 구성하는 경우가 반복된다 는 사실로 확인된다.

    살펴본 바와 같이 거창 수승대 일원 50개소의 원형경 관 요소들이 만드는 다양한 경관적 특성을 이해하였다. 현재 문화재로 지정된 대상은 명승 제53호 ‘거창 수승 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22호인 ‘거창 구연서원 관 수루’,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423호 ‘요수정’이다. 또한 거창군이 제공하는 수승대 리플렛에서 관광자원이라고 제시한 것은 거북바위, 요수정, 구연서원, 관수루, 그리고 바위글씨로서 연반석과 세필짐 뿐이다. 이렇게 보편적으 로 알려진 소수의 경관요소들과 비교해볼 때, 본 연구에 서 분석한 50개소의 원형경관 요소들이 지니는 인문학적 가치를 포함하는 경관적 의의를 설명할 수 있다.

    III.결론 및 제언

    본 연구는 지역의 자연유산인 명승의 활용과 지속가 능한 보존을 위해서 원형경관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진행하였다. 사례 연구 로서 거창군 황산마을에 입지한 수승대 일원의 원형경관 을 고찰하기 위하여 문헌연구와 현장조사를 시행하였으 며, 다음과 같은 연구 결과를 도출하였다.

    첫째, 수승대는 요수 신권과 퇴계 이황의 일화에 한정 하여 알려졌지만, 16세기에 성윤동이 수승대 아랫동네인 어나리에서 수승대 경영을 시작하였으며, 이후 수승대 일대에서 별서를 가꾼 신권과 갈계마을에서 수승대를 드 나들었던 임훈이 원형경관 조영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이들의 후손인 성팽년, 신복행, 신복진, 신수이가 경관 조영에 기여하였으며, 19세기까지 많은 문인들의 탐승이 이어지면서 수승대 일원의 원형경관이 완성되었다.

    둘째, 지금까지 수승대는 거북바위로 대표되는 일부 점적 경관에 주목되었으나, 본 연구에서 위천 변에 분포 된 구연동십구경을 포함하는 50개소의 원형경관 요소 들을 확인하였다. 이를 통해서 수승대 일원의 원형경관 을 ‘척수암’부터 ‘별암’까지 약 1.5km 거리에 이르는 ‘구 연동’이라는 영역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하 였다.

    셋째, 원형경관 요소들은 수승대와 구연서원 인근에 집중되었으며, 하천 변 입지를 통해서 얻어진 자연경관 요소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중에서 곡류하천에 형성된 바위(巖/ 石)의 비율이 높았는데, 거북(자라) 형상으로 이 름 붙은 바위들이 많았다는 점으로부터 수승대를 대표하 는 상징성을 이해하였다. 더불어 경관적, 풍류적 특성을 내포하는 자연 못으로서 ‘담(潭)’이라고 이름 붙은 원형 경관 요소들이 많다는 수승대 일원의 경관적 특성을 파 악하였다.

    넷째, 인문경관 요소 중에서 주요 경관 조망점에 위치 한 누정과 서원 등 원림 건조물이 가장 많았으며, 제방, 교량, 보와 같은 구조물이 포함되었다. 바위글씨는 경관 요소의 이름을 새긴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이곳에서 풍류를 즐겼던 인물들의 경관 조성과 경영에 대한 사실 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수승대가 약 400년에 이르는 시간동안 자 연성 높은 경관을 토대로 하여 역사적 인물들의 경관 경 영 내력과 풍류, 완상 행위가 누적된 공간이라는 사실과 그 결과물로 남겨진 다양한 경관 요소들의 위치와 형상 을 통해서 수승대 일원 원형경관의 범위와 특성을 이해 하였다. 본 연구는 원형경관 고찰에 한정되었지만, 자연 경관이 우세한 수승대 일원을 지속가능하게 보전하기 위 해서 특별히 보호되어야 할 지역, 휴양경관조성지역, 시 각 및 조망권 보호지역 등 세부 영역을 구분하여 인접 토지이용과 상충되는 부정적 요소가 발생하지 않도록 계 획하고 세부 지침을 마련하는 후속 연구가 필요하다.

    더불어 본 연구의 성과가 명승의 경관 관리 외에도 역사문화자원의 진정성을 체험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 정 보 제공과 같은 지역 관광자원의 활용에 기여하기를 기 대한다.

    이 논문은 2015년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대학회계 연구비 지원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Fig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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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location of Suseungdae

    KSRP-23-83_F2.gif

    The presence of 「Guyeon-dong sipgug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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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other archetypal landscape presence of Suseungdae area(except disappeared rema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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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major engraved letters of Susengdae Area

    KSRP-23-83_F5.gif

    The distribution map of the archetypal landscape elements in Suseungdae area

    Table

    The landscape features of 「Guyeon-dong sipgugyeong」 (*Cultural landscape elements)
    The other landscape features of the archetypal landscape elements in Suseungdae area (*Cultural landscape elements)

    A: Yosuseonsaengsilgi, B: Guyeonseowonji, C: Hwarimji, D: Geochanggunji,

    E: Wicheonmyeonji, F: Korean Classics Database(http://db.itkc.or.kr), G: Engraved Letter, H: Belief of Geochang-g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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